세종시에서 보내는 편지 (2)

4차 전원회의, 차등적용의 모멸감

 

 

1.

오늘은 세종시로 넘어가는 마음이 어수선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16일 제4차 전원회의는 노사 양측이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관한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금액 외에도 결정단위(시급월급), 차등적용 여부 등 다양한 안건을 토론하고 결정합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시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래서 내년에 얼마인데?’입니다. 작년에 한 차례 참여하면서 느낀건데, 사 양측의 최초 요구안이 제출 된 이후부터는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27명 위원들의 긴장감이 무지하게 고조됩니다.

 

2.

경영계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최초 요구안을 동결(6030)로 제출 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번에 동결을 제출하면 7년 연속입니다.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 된 이래 13번째이고요. (동결성애자?) 서울에 남아있는 사무실 식구들과 몇 가지 사업들을 협의하며 세종으로 내려가는 KTX에 몸을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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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후 3,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성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개회가 선언되었습니다. 4차 전원회의에서 다뤄진 중요한 안건은 차등적용이었습니다. 경영계는 오랜 기간 업종/지역/연령에 따른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을 주장해왔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경영계는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예술여가업, 사업지원서비스업, 운수업 등 7개 업종에 대해 더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적용하자는 요구안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제출했습니다. 경영계가 해당 업종을 차별하자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1) (제조업, 건설업과 같은 산업에 비해) 사업체의 지불능력이 낮다.

2) 해당 산업에는 단시간 근로자가 많다. 이들은 생계에 종사하기 보다는 용돈벌이와 같은 보조소득이다.

 

4.

경영계는 7개의 업종(주로 서비스업)을 차등적용 대상으로 제시하며 편의점, PC방과 같은 소규모 사업체의 어려움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익히 알려졌다시피 소규모 사업체의 어려움은 인건비 요인보다는 동종업계 내 경쟁의 심화, 불공정한 거래환경, 임대료원자재 인상 등 외부 환경의 변화가 더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일례로 2007년 전국의 편의점 점포 수는 1만 개 수준이었는데, 10년이 지난 현재 3만개로 무려 3배나 폭증했습니다.

 

5.

소규모 사업체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그것이 서비스업에 최저임금을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불능력 이야기가 나온 김에, 경영계가 제시한 산업에는 지불능력이 충분한 대규모 사업체가 포진되어 있습니다. (백화점, 대형마트, 철도, 공항 등) 차등적용은 노동자의 생활수준 보장이라는 최저임금의 취지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 지불능력이 충분한 대규모 사업체의 저임금 구조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소지가 큽니다.

 

6.

서비스업에는 단시간 노동자가 많고, 이들은 용돈벌이와 같은 보조소득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듣다보니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처럼 시간 당 임금이 낮게 형성 된 사회에서 단시간 노동은 비자발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으며, 다른 활동과 병행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학업과 병행하거나, 육아와 병행하거나. 누가 이들의 삶을 부차적인 노동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습니까. 용돈벌이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예 모든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쓰기 전에 주 소득원인지, ‘보조 소득원인지 확인하고 임금 수준을 책정하면 어떨까요? 웃기지도 않는 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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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최저임금을 결정함에 있어 어떤 업계에서 일하는지, 나이가 많고 적은지, 노동의 목적이 생계수단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노동은 평등하고 아름다우며, 우리의 1시간은 6,030원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8.

차등적용을 요구하는 경영계와 이에 반대하는 노동계가 1시간 반에 걸쳐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 3명이 연달아 발언권을 얻었습니다. (보통 공익위원들은 회의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발언권을 자주 얻지 않는데, 차등적용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았나 봅니다.) 공익위원들의 요지는 경영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의 논리에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9.

공익위원 측에서 예상 외로 강경하게 차등적용 요구의 허점을 지적하자 사용자위원들은 급격히 기운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영계 측 총책임자인 경총의 이동응 전무가 급히 발언권을 얻습니다. 그리고 정회(회의 중단)과 운영위원회(공익 대표 6인이 참여하는 소규모 회의)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박준성 위원장은 이를 승인했고, 공익 대표 6인은 오늘 회의의 운영방향을 토의하기 위해 바로 옆방의 위원장실로 넘어갔습니다.

 

10.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저녁 620분 경, 운영위원회가 종료되었습니다. 사 양측의 대표는 오묘한 표정으로 전원회의장에 복귀했습니다. 이윽고 623분 경, 박준성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운영위원회 결과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종료하는 것으로 노공익 대표위원들의 중지를 모았습니다. 당초 오늘로 예정되었던 임금수준 최초요구안의 제출은 다음 제5차 전원회의(23) 때 진행하는 것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11.

오늘은 회의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한창 토론과정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최저임금 결정단위(월급)과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노사의 갈등이 첨예한 만큼 오늘 모든 것을 결정짓지 말고 다음 주에 한 차례 더 토론을 진행하자는 뜻입니다.

 

12.

640분 경, (돌연) 회의는 종료되었습니다. 오늘 경영계의 최초 요구안을 확인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음주를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차등적용에 대한 노동계와 공익위원의 입장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것이 오늘 회의의 다행스러운 소득입니다.

 

13.

다음 전원회의는 23일에 진행됩니다. 법정시한(28)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결정해야 할 안건과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다음 주는 한층 더 격해지겠네요.

 

오늘 글은 이것으로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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