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은 노동자들의 권익과 복지를 향상하고 안정된 삶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입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전역에서 노동 착취에 대항하고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시작된 파업 집회인 헤이마켓사건을 계기로 1890년 5월 1일 첫 메이데이 대회가 개최되고 이후 노동자의 권익 신장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기념해오고 있습니다.

First United States Labor Day Parade, September 5, 1882 in New York City

매년 9월 첫 번째 월요일에 해당하는 노동절은 지난 1894년부터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어 왔다. 그러나 1894년 이전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이라는 노동자 조직의 노력 덕분에 공휴일로 지켜지기도 했다. 노동절은 미국의 노동자들에게 감사하는 뜻 깊은 날이다. 많은 도시에서는 노동절 행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각 노조를 대표하는 노동자들이 퍼레이드를 벌인다.”


 
 

경남청년유니온은 노동절을 기념하여 열린 노동개악저지 결의대회에 함께했습니다. 사전집회에서는 배원열 기획부팀장님이 노동법개악과 관련한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아래는 발언문 전문입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2017년 최저임금 6470원, 2018년 최저임금 7530원, 2019년 최저임금 8350원. 비록 최저임금이 만원이 되지는 못 했지만 이전과 다른 폭으로 인상된 최저임금을 보면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발짝 나아가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탄력근무제 확대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무슨 말입니까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긴 노동시간으로 고통 받아왔습니다. 노동시간 개정으로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의 변화를 보고 우리도 노동 선진국으로 한 걸음 나아가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탄력근무제 확대를 통해 6개월 간의 노동시간을 사용자 마음대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다구요? 그 업무 특성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여전히 효율성과 이익만을 따지며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여깁니다. 그 업무 특성은 사람이 죽어가는 곳이라는 것입니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어려운 법안이지만 이것을 통해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많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늘어나서 월급 오를 줄 알았는데 작년이랑 똑같더라, 최저임금 산입범위 때문에 작년보다 오히려 월급이 줄었다. 회사에서 작년에는 줬던 상여금 최저임금 올라서 안 준다더라.’ 이건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최저임금이 올라 월급이 오른 경우도 있습니다. 영세사업장에서 단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것대로 영세자영업자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2019년을 살면서 고민이 들었습니다. 최저임금은 올랐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의 임금은 늘어나지 않고 영세자영업자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도대체 지금 생겨나고 있는 법안들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이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는 ‘노동시간 줄이겠다, 최저임금 올리겠다.’ 이야기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삶은 긴 노동시간으로 고통 받고 저임금의 삶에 놓여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노동자 최저임금 늘어났으니 노동시간 줄여줬으니 이제 너희가 양보해라, 경제도 힘든데 기업들 굶어 죽는다. 하면서 계속해서 개악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계속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나아진 적이 없습니다. 좋은 법 만들어서 좋은 세상 만들어 주겠다 하면서 그 법을 이리저리 꼬아 악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노동자들 이런 악한 법과 노동환경 앞에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저 적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일하는 시간… 많을 수 있지만 건강할 수 있게, 돈… 많이 벌진 못하더라도 떼이진 않게.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좋은 노동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그만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노동자가 소모품처럼 사용되지 않고 그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하는 사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의 모습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창원 정우상가 앞에 있는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아직도 부조리한 노동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부조리로 인해 노동자들은 매번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크고 작은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노동자에게 희생과 착취를 강요하지 않는 노동의 가치가 소중히 여겨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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