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 조합원 조명 프로젝트 다섯번째!

정유미


옮긴이: 유지숙

편집자: 김민주&문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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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청년유니온 발족을 할 때부터 조합원이었던 건 아니었고요. 발족하고 얼마 안 돼서 조합원으로 가입했을 거예요. 그 당시에 저는 대학생이었고, 그런 세대별 노동조합 되게 재밌는 시도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함께하고 싶었죠.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 많은 선후배가 합류한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청년유니온 조합비를 10년간 내게 됩니다(웃음).

 

Q. 10년 전 청년유니온과 현재 유니온이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10년 전보다 지금 청년유니온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어요(웃음). 서울 영등포 사무실 있었을 때는 약간 동아리방 같은 데였어요(웃음). 그때 명화 나이트뒤에 있었는데 그 동네에 안 어울리는 애들이 모여 있다치면 청년유니온 사람들이었죠. 불광 사무실이었을 때는 제가 기자였는데, 청년유니온이 입주해있는 청년허브에서 자몽청도 팔고 그랬어요(웃음).

 

Q. 10년 동안 조합원으로 함께 하셨는데 청년유니온과 관련된 에피소드 기억나시는 게 있을까요?

초기 조합원 모임은 조합원이 많은 학교는 대학별로도 하고, 그래서 대학 별 모임하면 청년유니온 집행부가 놀러 오고 그랬어요. 특히 제가 있던 대학 조합원 모임이 서울 모임 중에서도 가장 컸어요. 조합원 22명에 대의원 3명이었거든요. 그리고 조합원 활동하면서 학원 아르바이트로 가르치던 학생이 저를 좋아해서 청년유니온 최연소 가입을 했었어요. 청소년 유니온 생기기 전 이었는데 그 학생이 당시에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당시에 청년유니온 최연소 조합원이 김병철 전 위원장님이었죠. 그래서 저희가 김병철을 위협한다.’ 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나요.


예전에 청년유니온이 주도해서 미용실 스텝들 권리 개선하려고 했었어요. 김병철 전 위원장님이 미용실 스텝으로 입사도 하고 그랬거든요. 입사해서 본인이 증언을 가지고 나왔어요. 그래서 신촌에서 미용실 스텝들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문화제를 열고 그랬었어요. 저희는 이게 하방이냐 위장 취업이냐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웃음).


! 그러고 보니 인터뷰 장소인 동숭동 이 근처에 관한 소소한 기억들이 있네요. 청년유니온 후원의 밤에서 제가 기타치고 노래했던 게 여기였어요. 그때 후원회 밤 포스터에 있는 김병철, 안태호, 정준영, 백우연, 한지혜 이렇게 그 당시의 핵심 멤버들이죠. 재밌어요(웃음). 청년유니온 대의원 교육도 이 뒤에 있는 대학로 연습실에서 했었어요. 기자되고 나서는 그리고 특히 지금 있는 신촌사무실 있죠? 제가 <한겨레> 기자 할 때 사무실이 (신촌)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 있었어요. 그래서 사무실에 가끔 놀러가서 밥도 먹고 아이스크림 사다주고 그랬었던 기억이 나요.

 

Q. 참여했던 활동(사업) 중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몇 개 있는데 <청춘유예>(청년유니온 다큐멘터리) 출연했던 거요. <청춘유예> 때 언론고시생이었던 제가 구직자 대의원 할 때 촬영을 했죠. <청춘유예>하고 기자가 됐어요. ‘양평시민의소리사업에 참여했던 것도요. 저희가 팀을 기획해서 피해자였던 조합원을 위해 대응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Q. 조합원으로서 뿌듯했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양평시민의소리. 조합원이 근무하고 있는 한 지역 언론사에서 성폭력 피해를 받아서 거기에 대한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형태로 꾸려서 청년유니온 차원에서 대응을 했던 거예요. 양평시민의소리 사업은 그해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안팎으로 뽑았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노동권 노조다운 일을 했다, 는 평가를 받았어요. 외부에서 봤을 때도 청년유니온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 해당 회사에 노조가 없거나, 본인이 사내 노동조합에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할 때 세대별 노조로서의 청년유니온이 이런 기능할 수 있구나, 라는 것들이 되게 유의미했어요.

 

Q. 조합원 활동 중 양평시민의 소리 사업이 인상 깊으셨던 것 같은데요. 관련해서 다른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양평이 너무 멀더라고요. 기차 타고 우리가 그때 당시 위원장님, 현재 한지혜 유니온 센터장님이랑 저를 포함한 대응팀이 양평까지 일 하러 가는데 얼마나 먼지(웃음). 양평 가는 내내 기차에서 수다를 떨었던 소소한 기억이 있어요. 당시에 구직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활동이었죠. 그리고 집행부에 있지 않는 한 그렇게 깊게 개입해서 일할 기회가 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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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교육청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공교육의 미래 모델을 디자인하는 거예요. 교육을 바꾼다고 할 때 정치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교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OECD에서 규정하고 있는 21세기 역량이 있어요. 소통과 협력, 창의력, 인지적 공감, 비판적 사고력, 문제 해결력 이런 것들이요. 이것들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게 하자, 였어요. 사람들은 학교에서 창의력을 못 배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창의력은 관계에서 나오거든요. 내 옆에 친구가 있어야, 같이 하기 어려운 친구가 있어야 창의력이 발달이 되고 문제해결력도 발달이 돼요. 그래서 학교에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는 그런 학교 교육에 잠재력을 살리는 일을 하고 저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전직 기자셨고, 지금은 교육모델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시는데요. 지금 관심 가는 업무나 공부가 있을까요?

조직경영이요. 이게 프로젝트 베이스 일을 하게 되니 되게 중요해요. 제가 작은 조직에만 있었고 스타트업에 있어서 명확하게 딱 경험해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팀원들이랑 정확한 마인드 스톤을 가지고 워크숍을 다 짜고, 단계별로 진행하여 종국에는 그 일을 어쨌든 성취해내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중요한 거 같아요.

 

Q. 요즘 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보면 공정과 형평성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제는 회사가 나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나의 역할을 설명해야 되는 시대가 왔어요. 그래서 개인들이 더 힘들어졌을 수는 있지만 부당한 변화는 아니라고 봐요. 그리고 더 이상 공채에 목매거나 고시를 봐야 하거나 학점을 잘 따야 된다고 생각한다거나 스펙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하지 않아요. 그렇게 스펙이 좋은데도 취직이 안 되잖아요, 라고 한다면, 역으로 스펙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닌가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스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증명하기 쉬운 지표가 그것밖에 없어서예요. 우리는 그런 숫자로 증명되는 것들이 공신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런 것도 저는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고민해야 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최저임금 캠페인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10년 전에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최저임금 캠페인 때, 홍대에서 진행했을 거에요. 최저임금 7000원도 안 된다고 햄버거 세트 하나 못 먹는다,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였어요. 막 홍대 한복판에서 박카스 탈을 쓰고. 청년들이라 할 수 있는 퍼포먼스 같았죠. 지금은 웬만큼 마음먹지 않고서야 못 할 텐데 말이죠(웃음). 그때 저는 최저임금을 꼭 올려야 돼라는 사명감 보다는 재밌겠다, 생각이 더 컸어요. 뭐든지 재밌게 해보자는 게 제 모토였거든요.

 

Q. 최저임금이 화두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계속 새로운 노동의 형태가 개발되고 있고, 기업도 새로운 노동 형태를 개발하고 있어요. 노조도 당연히 새로운 형태에 대응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형식으로 권리를 대변할 것인지 생각해야 돼요. 우리 아들은 어떤 노동을 하게 될까? 어떤 형태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 그런 게 앞선 세대로서의 과제인 것 같아요. 최저임금도 그 선상에 있고요

 

Q. 대의원을 오래 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양평시민의소리 비상대책위원회팀에 있었던 게 (제가)여성대의원 이여서 그랬을 거예요. 예전에는 지역대의원 모임도 했었어요. 그래서 영등포 사무실이었을 땐데 서울지역 대의원 모임에 서울에 있는 모든 대의원이 모였어요. 모임은 회의를 하기도 했고, 사무실에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진행했었어요.

 

Q. 대의원 활동은 얼마나 하셨나요?

제가 청년유니온에 대의원을 2010~2014년까지 했어요. 여성대의원부터 구직자 대의원까지 했거든요. 2014년 중반에 대의원을 그만둬야 해서 탈퇴의 변을 썼었어요. 그러고 보니 대의원 교육을 갔던 게 기억이 나긴 해요. 대의원 교육 재밌었는데 10년 전이라 자세히 기억이 안 나네요(웃음).

 

Q. 지금 청년유니온 대의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해요. 태도의 문제. 내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 보다 할 거 재밌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너무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나 싶지만, 너무 간단한 거 같아요. 일도 재밌게 하고 재밌게 못 할 거 같으면 안 하면 되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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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성 노동자로서의 현실의 벽에 부딪혔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임신이요. 임신은 사람마다 너무 달라서 어려워요. 저는 굉장히 건강한 편이에요. 임신의 경우 제도적으로 규정해놓기도 어렵죠. 지금 제가 임신 9개월이거든요? 예정일까지는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거 같아요. 진짜 만삭까지 일하는 경우에는 오늘 출근하고 내일 출산하겠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해요. 저희 회사가 충분히 저를 배려해줄 용의가 있지만 제가 일이 필요하기도 해서 계속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임신은 사람에 따라 너무 다른데 내가 이렇게 임신을 해서 회사를 끝까지 잘 다니는 게 나머지 임산부들에게 좋은 일일까? 저도 이제 막달이 되니까 바른 자세로 오래 일을 할 수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바르게 앉아서 일하면 몸이 저려요. 임신과 출산은 진짜로 무엇도 예측할 수 없어요. 지금은 제가 건강하지만, 나중에 둘째를 가지게 된다면 입덧이 엄청나게 심해지거나 막달까지 아무것도 못 하면 일찍 쉬어야겠죠. 아니면 아이가 어린이집 적응을 못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게 계획이 안돼요. 예측하기 어려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서 나의 노동도 불안해진다는 것이 어려워요. 근데 그게 어쩔 수 없잖아요.

 

Q. 일을 하시면서 여성 노동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불편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당했던 건 아니지만, 기자 선배 중에 모 학교에 취재를 갔는데 교사와 기자가 모여서 밥을 먹었대요. 어떤 선생님이 제 선배한테 제 옆으로 앉으세요.” 라고 말을 했대요. 그래서 선배가 저 손 좀 씻고 오려고요.” 라고 했더니 그분이 갑자기 어 그럼 제가 씻겨 드릴게요.” 라고 해서 그 선배가 어 ? 제가 씻을게요.” 하고 당황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게 여기자가 아니었으면 굳이 손을 씻겨준다고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저희 회사 왔을 때는 여성으로서 부당하게 겪는 일은 별로 없어요. 제가 작년 11월에 결혼을 했어요. 원래는 작년 12월에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같이 해외 사업을 해서 올해 6개월 동안 한국에 없을 예정이었어요. 저는 그게 너무 하고 싶었던 사업인데 임신을 하고 나니까 사업 참여를 할 수가 없게 됐었어요. 순간 너무 억울했어요. 그곳에 가서 우리 선생님들이 만든 교육 솔루션을 거기다가 전해 주는 게 제 일이었는데 또 그게 다시 안 오는 기회거든요. 그 순간에 현타가 왔어요. 내가 열심히 준비한 사업인데 내 임신과 출산이 내 일에 영향을 준다는 게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오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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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청년유니온에서 해보고 싶은 것 혹은 기대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앞으로의 변화되는 사회에서는 어떻게 활동을 이어 가야하나, 라는 고민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이 변하니까 앞으로의 노동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사회가 변화하고 노동 형태가 플랫폼 노동 같은 이전과 다른 형태의 노동이 계속 나올 것이고, 프리랜서들은 더 많아질 거예요. 저는 이 다음 세대에는 어떤 노동, 어떤 가치가 생길 건가 그런 것을 유니온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앞으로 더 빨리 바뀔 것 같고, 그렇다면 빨리 바뀌는 태세 속에서 안 놓을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나에게 청년유니온이란?

제가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 많이 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네요(웃음). 청년유니온은 제 자랑이에요. 그리고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거요. 20대 초중반에 정말 재밌게 남들 못하는 경험 많이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는 자신감. 그 시간이 저한테 귀한 거 있죠?

! 신난다! 청년유니온 내 자유!’ 하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웃음).청년유니온 사무실에 김영민 사무처장님한테 청첩장 준다고 작년에 놀러 갔었어요. 그래서 제가 빵도 놓고 왔을 걸요? 사무실 다녀오면서 한지혜 센터장님이 또 없다. 내가 올 때마다 없다.” 그렇게 얘기하면서(웃음). 2의 고향까지는 염치없지만, 저한테는 돌아가면 아직 누구 한 명은 남아있는 커뮤니티예요.

 

Q. 10주년 축하멘트

10년을 버티다니 너무 장하다. 10년을 버티다니 너무 장해! 조금 더 앞으로 더 어려울 수 있지만,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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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조조’는 조합원 조명 프로젝트의 줄임말로, 청년유니온의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청년유니온 10주년 기획단 <온열즈>가 기획했습니다. 그동안 청년유니온의 다양한 활동에 함께해왔으나, 많이 조명되지 않았던 조합원을 만나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활동하게 된 계기, 기억에 남는 순간, 조합원이 생각하는 청년유니온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나누며 10주년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조조’인터뷰는 남은 2020년에 계속 업로드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혹시 내 주변에 조명하고픈 조합원이 있다면 아래 링크로 신청해주세요!

bit.ly/조합원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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