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 조합원 조명 프로젝트 여섯 번째!

임기웅

 

옮긴이 : 조명산

편집자 : 문서희




Q. 자기소개와 함께 청년유니온 가입 계기를 소개 해주세요.


인천에서 마을활동을 하고 있고, 영상 일과 여러 가지 작가활동을 하는 임기웅 조합원입니다. 가입하게 된 계기는 2010년도에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돈도 없고 자리 잡은 것도 없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막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그때 신문기사에 영경님이 청년들이 모여 무엇인갈 만든다는 이야기를 봐서 거기에 꽂혔어요. 동료가 필요하다니까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갔고, 창립총회 전에 후원의 밤에서 사무국장 역할을 하는 조금득님을 만났는데 처음 온 사람들을 환대 해주는 게 있더라고요.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그때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는 동료가 없었는데, 청년유니온에 가입하면서 동료가 생긴 느낌이어서 너무 좋았어요.(웃음)

 


Q. 참여하셨던 활동 중에서 어떤 게 기억에 남으세요?


처음에 했었던 것은 최저임금 사업이었는데, 우리 때는 시급이 너무 낮으니까 절박하고 주장하기 쉬웠어요. ‘한 시간 일해서 빅맥 버거 하나도 못 사먹는다.’ 라고 주장 하니까 그게 되게 대중들에게 설득하기 쉬웠던 주장이었던 거 같아요. 명동에서 피켓팅을 처음으로 같이해서 기억에 남아요.


그 다음으로 안창규 감독님이 우리 다큐(청춘유예)를 촬영하셨는데 주 내용이 카페 주휴수당이었어요. 카페베네하고 교섭하러 들어가는데 감독님 본인이 못 간다고 카메라를 저한테 맡기면서 찍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카페베네 본사 앞에서 페이스북으로 중계했던 그때가 되게 기억에 남아요. 저도 원래는 카메라 설치 해두고, 들어가려 했는데 그쪽에서 들어오면 안된다고 해서 저는 들어가지 못했어요. 저는 바깥에 있었고, 그때 안에 들어간 사람이 성주형이랑 김영경위원장이랑 민수 이렇게 세 명이 들어가고 저는 밖에서 좀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죠. 다행히 결과가 잘 풀려서 그때가 기억에 되게 많이 남았어요. 성주형이 교섭 마치고 나오면서 미소를 짓는 표정이 지금도 생각이 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때 당시 자문노무사님이 차 안에서 정말 진짜 대단한 일 했다고, 그 이야기를 할 때 쫌 짠 하더라고요. 내가 아주 작은 영웅들이 옆에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김민수 전 위원장 같은 경우, 청소년으로 와서 스무살 때 본인이 노동법을 뒤져보고 그렇게 찾아낸 게 주휴수당이었으니까. 물론 당시 교섭자리에는 없었지만 피켓팅하고 캠페인 하신 분들도 다들 대단하셨어요.

 



Q. 청년유니온이 10년이 되었잖아요. 10년 역사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으신가요?


김민수 위원장이 최저임금 위원회에 들어갔을 때. 최저임금 운동 할 때 당사자가 협의과정에 참여해야한다고 주장 했었는데 그게 진짜 이뤄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민주노총에서 제안이 오고, 알바노조에서 안한다 하고 우리는 들어간거죠. 그때 아직도 기억이 남는 게 김민수 위원장이 전국을 돌았어요. 인천도 지부가 만들어졌는데 인천에 와서, 제가 조합원분들에게 자신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에요. 최저임금을 인상을 해야한다 말하면서 그 최저임금 위원 중 한명이 여기 있으니까 빨리 오셔서, 여러분들의 억눌렸던 마음을 말씀해주십시오. 최저임금위원회에 우리 위원장이 들어갔다는거 자체가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하나의 가능성 있는 성공들이 하나씩 맞춰져 가는 느낌? 그게 그때 당시 조합원들한테 굉장히 자부심 있었어요. 주휴수당부터 서울시 일자리라던지 성공들이 쌓여가니까. 여태까지 개인적으로 만연했던 패배주의라던가 우리 삶은 왜 이럴까 이런 자조적인 생각이 많이 사라졌어요. 같이 모여 있으니까 되더라.


그리고 인상 깊은 장면 두 번째는 유니온이라는 이름 자체가 여기저기 퍼져나가고 있는 거. 권리 찾기 유니온, 노년유니온 등등 유니온이라는 단어 자체를 뒤로 붙이는게 점점 많아지고 있고, 사회에서 하나의 주류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죠. 이게 되게 뿌듯해요.

 



Q. 앞서 말씀해주셨던 사례들 외에 청년유니온 조합원이라 뿌듯한 순간들이 또 있으실까요?


개인경험으로 뿌듯한 걸 하나 더 말씀드리면 지역에서 활동 할 때 청년유니온의 활동이 저한테 강점이 되는 요인이 많았어요. 지역에서 활동 할 때 인천청년유니온 하고 있다고 소개되면 사람들이 더 이끌어주는 것도 있어요. 제가 지금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청년유니온이 컸다고 생각해요. 어디를 가도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이라던지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했다는 걸 다 인정하고 받아주니까. 활동했을 당시 지부 위원장 모임에서 김민수 위원장이 우리는 하나의 브랜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웃음)

 



Q. 마을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기웅님께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인천에 배다리라고 있어요. 거기서 마을 작가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작업을 해요. 전시 작가 활동도 하고 미니어처 같은 걸 만들기도 합니다. 주업으로는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있는데, 청년유니온에서 알게 된 형 덕분에 카메라를 맡고, 찍게 되면서 작업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지금은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Q. 프리랜서로 일하시면서 억울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셨을까요?


제 사례는 너무 독특한 사례라서 일반화하기 힘든 게 저는 솔직히 이렇게 청년유니온 통해서 일하고 나서 나쁜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이걸 일반화 할 수 없어요. 일반적인 민간과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일을 많이 겪어요. 저는 애초에 그런 일은 거절해요. 예를 들어 예전에 OOO후보 대선캠프에서 의뢰가 하나 왔었는데 말도 안 되게 비용을 싸게 제안해서 제가 거절 했거든요. 근데 한편으로는 진짜 돈이 없고 당장 급하면 사람들이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저는 청년유니온 덕분에 지금 내 상황이 이렇게 나아진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만 좋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프리랜서 협동조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도 프리랜서의 노동자성에 대해 많이 고민 했었는데 되게 애매한 것 같아요. 성격이 노동자와 사용자(고용주)의 딱 중간에 있는 거 같아요. 진짜 말 그대로 프리랜서만의 그 독특한 지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프리랜서만의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해서 지금 다양한 업/직종의 협동조합을 한번 만들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공연노조 협동조합으로 한정하면 지금같은 코로나시국에는 다 같이 어려워지는거에요. 이렇게 분야를 한정하면 답이 없지만 다양한 업/직종의 프리랜서들이 몰리면 협업이 가능 한 게 장점이에요. 코로나가 확산되어도 영상 일은 되게 많이 들어왔거든요. 비대면으로 해야 하니까 강의하시는 분들도 구청이나 평생교육관에서 영상을 만들어서 보내줄 수 있는지 이런 식으로 다 바뀌는거에요. 그래서 크고 작은 영상 일이 되게 많이 들어오는 거죠. 반면에 현장에서 대면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일이 없어지니까 업/직종을 묶어서 협동조합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지역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 5~6명 모여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모여서 이야기 나눈건 프리랜서 일은 휘발성이 굉장히 강해요. 이게 일이 들어왔다 금방 사라져요. 이럴 때 어떤 플랫폼을 만들어서 어디서 어떤 곳에서 일이 왔을 때, 되게 포화상태야 일을 더 이상 못하면 나는 거절하면 끝인데 다른 사람에게 공유 될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리고 연차가 쌓인 프리랜서들은 큰 건으로 일이 들어와요. 예를 들어서 어디 공연기획 건 같은 경우 사업자 통해서 그거는 10~15명이 필요하면 협동조합이 다 같이 붙어서 하는 거죠. 플랫폼에서 협업이 가능한 방식을 만들어가는 거죠.

 

Q. 앞으로 청년유니온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딱 이대로면 좋을 것 같아요. 오히려 과한기대를 하면 힘들어하는걸 봤어요. 과거 인천지부에서 지출하는걸 너무 어려워하더라고요. 이걸 조합원에게 하나 하나 보고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거죠. 이게 결국은 어떤 사업을 할 때도 다 허락 받아야 하는건 아닌지 이런 고민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합원들이 믿고 내는 조합비니까 써도 된다고 얘기를 많이 해줬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버텨 주는 거 자체가 고맙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규모가 작은 조직한테 최대한 존재하는거 자체가 고맙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요. 물론 본부는 다르죠. 지금처럼 유니온의 흐름을 잘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요즘은 운동하는 게 참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 때는 청년이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하면 다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인국공사태를 보면 그게 아닌거죠. 알바가 운 좋게 정규직 된다고 이야기 한다는 걸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었어요. 막 차별을 만들어 버리고 작가가 되겠다고 고시원 생활하면서 매 순간 등단 안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서 20대를 보냈거든요. 근데 저는 그 시절을 보상 해달라고 주장 할 수 없는 건 그거는 본인한테 투자한 시간이지 그게 사회가 보장해줘야 할 건 아니잖아요. 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청년의 목소리가 된다는 것, 전체 청년을 대표하는 것처럼 이야기 되는 게 참담해요. 지금 운동하는 분들이 어렵겠지만 최후의 보루처럼 남아계셨으면 좋겠어요.

 


Q. 기웅님에게 청년유니온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주변에 있는 아주 보통의 영웅들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아주 보통의 영웅들. 나도 영웅이 되었던 것 같고, 지구를 지키는 것 까진 아니지만, 그거 되게 짜릿했어요. 퇴직한지 6개월 된 분들까지 주휴수당을 받아내는거 보면서 짜릿했어요. ‘영웅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누구 한 명만 영웅이 아니라 같이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영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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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조조’는 조합원 조명 프로젝트의 줄임말로, 청년유니온의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청년유니온 10주년 기획단 <온열즈>가 기획했습니다. 그동안 청년유니온의 다양한 활동에 함께해왔으나, 많이 조명되지 않았던 조합원을 만나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활동하게 된 계기, 기억에 남는 순간, 조합원이 생각하는 청년유니온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나누며 10주년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조조’인터뷰는 남은 2020년에 계속 업로드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혹시 내 주변에 조명하고픈 조합원이 있다면 아래 링크로 신청해주세요!

bit.ly/조합원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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