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조합원 조명 프로젝트! 여덟번째!

문진호

인터뷰 & 편집 : 문서희

Q. 안녕하세요. 진호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예전에는 부산에서 활동을 했었고, 지금은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오면서 경기 조합원인 문진호라고 합니다.

Q.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시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었고, 학교 나와서도 여기저기서 진보적인 활동을 하다가 힘들기도하고 안맞아서 고향인 부산에 내려갔어요. 거기서 문득 청년유니온이 떠올랐어요.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부산에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음카페에 검색해봤죠. 다음카페에서 부산 모임이 있길래 그때 가입 신청을 했어요.

Q.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가입을 하고 몇 달 뒤에 유니온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연락을 늦게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조합원들이랑 같이 놀러가는 자리가 있는데 오지 않겠느냐 하셨어요. 그때부터 모임도 나가고 열심히 놀다보니까 저한테 운영위원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때는 활동조합원 수가 적으니까 열심히 하고 재밌게 하는 사람 있으면 다 집행부로 같이하자고 제안하던 시기였어요. 처음에는 교육팀장 하다가 나중에는 대중사업팀장, 조직팀장을 하게 되었어요. 조직팀장이 되어서 한 달에 한번씩 조합원들이랑 만나는 ‘조합원 만남의 날’을 기획했어요. 그 중에 경남지부와 함께 구미 금오산에 단풍놀이를 갔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아무래도 운영위원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조직팀장이셨으니까 조합원 가입에 좀 더 신경을 쓰셨을 거 같은데, 먼저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청년유니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셨나요?

부산 지부에서 소식지 만들 때 인터뷰어가 되어서 해본적도 있고, 청유 일정이나 모임 나갈 때 거기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면 설명하기도 해요. 세대별 노동조합이라고 설명을 시작하는데,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노동조합 그리고 시민단체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그런 단체라고 설명하죠. 근데 보통은 이렇게 해도 잘 모르시기도 하고 결국은 언론에서 다뤄졌던 사례들 위주로 말하게 되어요.

Q. 어떻게 하면 조합원이 많이 늘어나는거 같으세요?

그때 당시 부산은 청년을 만나는거 자체 힘들었는데, 본부에서 시간제한 배달 폐지했다거나 최저임금위원 위촉 받았다고 언론에서 주목 받으면 조합원수가 확 늘어나요. 결국 공중전(?) 이런거에 의지하게 되는거 같아요. 부산은 주로 알음알음 학교를 중심으로 아는 사람들 위주로 많이 오고해서 그게 좀 아쉬웠어요. 그래서 한번은 부산 운영위에서 길게 토론을 해본적이 있었어요. 조합원 확대를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논의할 때 제가 다소 고전적인 방법을 제안했죠. 1명을 오게하기 위해서 식당들 전단지 돌리는 것처럼 결심을 해야한다. 공장 노동자분들이 많이 출퇴근하는 곳에서 1만장의 전단지를 뿌려서 1천명이 읽고 1백명이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그중 10명이 우리한테 연락해서 1명이 가입하면 다행이다는 마음으로 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때 전익진 위원장, 부산지부장이 지지해줘서 한번 시도해볼 수 있었어요. 부산에 하단이라는 공장이 있는 지역이 있는데 퇴근버스 시간에 맞춰 갔는데 사람이 없는거에요. 저도 공장에서 일해봤는데 깜박했던거죠. 수요일은 대부분 잔업 없는 날, 가정의 날 이어서 8시에 퇴근하는게 아니라 5시, 6시에 퇴근하는 날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적었는데 그래도 그때 부스 깔아놓고 홍보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부산에서 웹디자인 하는 운영위 중 한명이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을 다 청년유니온로고로 바꿔보자. 청년유니온 로고에다가 부산지부니까 갈매기를 넣어서 프로필 사진을 만들었어요. 운영위원이 다 의무적으로 프로필사진을 바꿔두면 누군가 물어보지 않겠느냐 한거죠. 문제는 운영위원 단체카톡방에서 다 같은 프사여서 누가 얘기하는지 잘 봐야하는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Q. 전국 활동가 워크숍에 참석해보셨다고 들었는데 어떠셨나요?

시흥에서 했을 때 참석했어요. 활동가 워크숍은 1박2일로 전국에서 모이는 자리여서 재밌었죠. 지역마다 사용하는 단어나 활동들에 대해 얘기할 때 느낌이 다르달까. 많이 배우는 자리이기도 하고 뒷풀이 때도 재밌었고, 또 돌아갈 때는 ‘우리 지부 잘하고 있네’ 라는 자부심도 들기도 했어요.

Q. 조합원으로서 어떤 때에 뿌듯함을 느끼시나요?

청년유니온이 지향하는건 결국 청년들의 삶이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이런 목적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걸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부분이 좋았던거 같아요. 예를 들면 초창기에 시간제한 배달제 없애는 걸 이끌어냈다거나 고 이한빛PD 때도 방송노동현장을 바꾸고자 여의도에 가서 캠페인하고, 최근에 팟캐스트 들었는데 패션어시 조직하고 있는 것들이에요. 구체적인 현장에서 출발해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뤄내는 게 조합원으로서 뿌듯해요.

Q. 인상 깊은 노동경험 말씀해주세요.

저는 사실 모든 일에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아요. 농담 삼아 얘기해본 적 있는데 저는 어느 회사를 다니던 자발적 노예가 되는 거 같아요. 일을 좋아한달까. 이전 직장을 항공사의 하청업체에서 일했었는데 경전철을 타고 출근길에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 절반, 여행가는 사람 절반이 타고 있어요. 그런 장면들을 보면 ‘아 내가 저 분들이 재밌고 편안한 여행에 도움이 되고 있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보람을 찾고 있는거죠.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경험은 처음 취업했던 게 선배들이랑 논의를 해서 결정한 자동차공장의 비정규직이었어요. 진보적인 활동의 연장선에서 그때 당시에는 공장에 취업하는 게 활동 현장이라고 봤었죠. 실제로 사람도 부족하기도 하니까. 그때 크게 느꼈던 게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처음 직장이다보니 학교랑 비교하게 되는데, 학교는 우리가 돈을 내고 다니는 곳인데 회사가 훨씬 시설도 좋고 복지도 좋은거에요. 회사는 월급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죠.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게 조합원들의 이익만 추구하면 안되지만 동시에 그런 성격도 버릴 수 없는거구나. 줄타기를 잘해야하는구나 라는 걸 느꼈죠. 제가 일했을 때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가 하나로 되어있어서 모범사례로 손꼽히기도 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 그 경험이 조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Q. 청년유니온이 10주년을 맞이했어요!

우리 존재 모두 고생많았다.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지난 10년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역에서 본부에서 각자 각개전투도하고 전국적으로 모이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게 해왔으니까요.

Q. 앞으로 청년유니온에게 기대하는게 있다면?

앞서 말씀드렸지만,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로서의 성격에서 줄타기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거쳐가는 세대로서,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잘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Q. 진호님에게 청년유니온이란?

사실 작년에 졸업인줄 알았는데 올해까지 조합원이라고 해서 좋아했거든요. 핑계지만 코로나도 있고 많이 참여는 못했는데, 아직도 하고 싶은게 많은데 졸업하라고 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청년유니온은 제가 외롭고 뭔가 하고 싶을 때 찾아갔던 곳이라서 더 애틋한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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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조조’는 조합원 조명 프로젝트의 줄임말로, 청년유니온의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청년유니온 10주년 기획단 <온열즈>가 기획했습니다. 그동안 청년유니온의 다양한 활동에 함께해왔으나, 많이 조명되지 않았던 조합원을 만나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활동하게 된 계기, 기억에 남는 순간, 조합원이 생각하는 청년유니온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나누며 10주년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조조’인터뷰는 남은 2020년에 계속 업로드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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