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솔

인터뷰: 바람, 이채은

편집: 장슬기

Q.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되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저는 아직 청년유니온이 이렇게 오래 되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가지고, 내가 그럴 정도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 듣기로는 과거에 활동하셨던 조합원들 중에서 10주년 맞이해서 새롭게 조명한다 이러셔가지고. 그 정도로 오래됐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이 빠르구나. 행사 갈 때마다 그런 걸 느끼는 거 같아요.

Q. 청년유니온에 가입하신 계기를 알려 주시겠어요?

가입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했고, 그때 당시에 지역에서 하는 미디어 사업 중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는데요. 거기에 제 다큐멘터리 선생님의 첫 작품이 청춘유예라는 작품이었고, 그 작품을 인디스페이스에서 보고 청년유니온을 알게 됐어요. 그 후에 제가 개인적인 대외활동으로 고용노동부 알바지킴이를 했었는데요. 마침 그때 청년유니온에서 청소년 사업팀을 꾸리려고 했던 때라, 처음에는 활동회원으로만 청소년사업팀 활동을 하다가 청년노동학교에 참가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청유 조합원들 만나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 날 가입하게 됐어요.

Q. 청춘유예 다큐멘터리를 선생님 추천 통해서 알게 되신 거에요?

아, 선생님이 제작하고 감독하신 첫 장편 다큐멘터리였어요. 그게 청년유니온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거든요.

Q. 그 청춘유예 작품 보고 어떠셨어요?

거기서 출연진 중에 한 분이 인터뷰를 했는데, 그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근데 그 말을 그 분이 인터뷰에서 하셨어요. 근데 저는 그걸 어린 나이에 듣고 ‘아, 그래. 이게 개인의 일이 개인의 일로만 끝나면 안 되는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개인의 일이 개인의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회적인 일이 될 수 있고, 내가 아니더라도 내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먼 미래를 보면 내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 나와 살이 맞닿아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 개인적인 일을 개인적인 일로만 끝내는 것보다는 이렇게 바꿔 나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거 듣고 이제 머리가 빵 열리는 느낌 있잖아요. 아, 맞네. 이러고. 그래서 그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듣기로는 예솔님이 청소년유니온 창립했던 시기부터 함께 했던 분이라고 들었어요. 참여했던 활동 중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나요?

그때 무슨 사업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나는데, 카페 같은데 들어 가가지고 아르바이트하시는 분들한테 인터뷰같은거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카페 알바생 분들한테 명함만 나눠드리는 척 하면서 거기 노동상담 전화가 적혀있다던지, 뭐 이런거 해서 명함 드렸거든요. 근데 그 중 한 분이 막 사장님이시고 이랬을 때가 있었어요. (웃음) 되게 젊어 보이셔 가지고 당연히 아르바이트 노동자구나 하고 줬는데 사장님이셔서 좀 뻘쭘했던 적이 있었어요. 요즘에는 여성, 청소년 이렇게 좀 포커싱을 맞춰서 하잖아요. 그때 당시에는 워낙에 청소년 노동 자체가 터부시된 상황이어서 아마 모든 청소년 노동자들에 관한 그런 사업이었던 거 같아요.

Q. 그러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청년유니온 조합원으로서 뿌듯한 순간이 있으셨나요?

일단 제가 들어왔을 때도 이미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노동조합이었지만, 매년 제가 총회를 참석하면서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막 지부가 생기고, 지방에서 오시는 분도 생기고, 총회 때 참여하시는 분들도 훨씬 많아지고 이럴 때. 점점 같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걸 느낄 때, 저와 공감하는 다른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느낄 때. 그럴 때 뭔가 든든하면서 뿌듯한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또 제 주변에 부당한 노동경험을 한 친구들이 그런 거를 이야기하면 제가 노동상담 전화번호 알려주고 이럴 때 좀 뿌듯해요. 친구들이 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저한테 물어 봐요.

Q. 최근에도 청년유니온 소개하거나 그런 적 있으세요?

청년유니온 소개 할 일이 많이 없어진 게, 요즘에는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없으니까. 저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주변에 공부를 했으면 했지, 아르바이트만 하는 친구들이 점점 없어져서요. 다 취업을 한다던지 이렇게 되있어 가지고. 요즘에는 그렇게 소개했던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오히려 어렸을 때 스무살, 스물한살 이럴 때 소개를 많이 했었어요.

Q. 그때 뭐라고 하면서 소개를 하셨어요?

내가 지금 노동조합에 있는데 거기서 노동상담 전화를 한다. 그래서 나 아는 분이 아마 받으실 거니까 미리 이야기를 해놓겠다 이렇게요. 그때 노동상담 하시는 분에게 연락해서 ‘제 친구가 이런 문제 때문에 내일 전화한데요.’ 이야기 해놓고 그랬어요.

Q. 그 친구가 가입도 하고 그랬어요?

가입까지는 안 갔던 거 같아요. 관심까지는 몇 번 보였던거 같은데, 가입은 안한거 같아요. 가입 유도하기 어려운 게 청소년 때는 더 했어요. 왜냐하면 청소년유니온은 일단 청소년들이 돈도 없고. 그래서 제가 막 총회 때 그런 의견을 냈어요.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조합비를 3천원으로 해달라고. 왜냐하면 저는 그때 용돈을 3만원 받을 때였거든요? 그거에 10프로를 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많잖아요. 용돈 한 달에 3만원 받았는데. 그러니까 나도 조합원으로서 뭔가 하고 싶은데 조합원 가입 못하고 활동만 했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되게 많았어요. 청소년유니온에서 활동은 하는데 활동회원이기만 하고 조합원은 아닌.. 조합비가 너무 부담되서. 그래서 한지혜 위원장님 의견은 청소년이나 청년들이나 돈 없는 건 똑같은데, 똑같이 내야 되지 않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는데.. 결국에는 3천원으로 됐어요.

Q. 청년유니온 10년 역사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무래도 처음 청년유니온 행사 갔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데요. 그때가 첫 인상 페스티벌인가? 홍대에서 최저임금 인상하는 시기에 맞춰서 저희가 활동을 했었잖아요. 그 최저임금 위원회 테이블 들어가기 전에도 막 활동을 했을 때요. 청소년 때라 최저임금이 뭔지 잘 모르고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같은 청소년은 그 때서야 아, 최저임금이라는게 있구나 했고. 그리고 있어도 이거를 그냥 매년 몇 퍼센트 정도씩 올리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아, 이게 위원회를 통해서 결정이 되는구나. 이거를 처음 알았던 시기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앞으로 청년유니온에서 예솔님이 해보고 싶은 거나 혹은 청년유니온한테 이런 걸 기대한다하는 게 있으신가요?

음.. 어렵네요. 그 인권이라는 게 점점 이어지잖아요. 이게 처음에는 노동에 관심 있었다가, 뭐 퀴어나 장애인 인권이나 주거나 이런 것도 다 생각하게 되고, 점점 가지를 뻗어 나가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청년유니온을 통해서 그런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그 소수자들에 관련한 그런 활동들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인상 깊었던 노동 경험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근데 노동 경험이라고 해봤자, 한군데에서 계속 오래 있었어가지고. 그래서 그거밖에 말씀 드릴게 없어요. 지금은 그만뒀거든요? 전 직장을 좀 오래 다녀가지고, 6년 정도 다녔고. 계열은 의료쪽 공공기관이었어요. 행정업무 했었어요. 컴퓨터를 열심히 두드렸어요. (웃음)

Q. 어떻게 그만 두게 되신 거에요?

그냥 개인적인 발전이 없다고 느껴 가지고 그만두게 되었고요.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애초에 그만 두려고 들어간 직장이긴 했어요. 그러니까 처음 들어갔을 때 ‘오래 다니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어쩌다 보니까 오래 다니게 되어서요. 정신을 차리고 그만둬보자 이렇게 된 거죠. 저랑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공공기관, 공기업이라는 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좀 수직적이고, 딱딱하고, 되게 보수적이고, 동적이지 않고 정적이고. 이러다 보니까 제 성격이랑 안 맞는다고 생각이 돼서, 이제 나는 여기 어느 정도 돈만 벌고 그만 둬야지, 어느 정도 경력만 채워지면 그만둬야겠다 했죠.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다녔죠. 6년을 다녔으니까. 이게 지나다 보면 익숙해져서 계속 다니게 되는 거 같아요.

Q. 그럼 어떤 일을 하면 개인적인 발전이 있을 거 같으세요?

음.. 저도 그거에 대해서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발전이 없어서 그만뒀으면 앞으로 발전이 있는 일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뭔가 제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일자리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전 회사 다녔을 때 내가 없어도 여기는 아주 잘 돌아가고, 나 하나 빠져도 영향이 없고, 나 하나 내일 죽어서 없어져도 아무도 여기서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거에요. 실제로도 저희 회사에서 한 분이 자살한 적이 있었거든요? 직원이. 근데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거 보고 약간 좀 충격 먹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되가는 걸 느꼈어요.

어제 깜짝 놀란 게 무슨 기사가 올라왔는데 어린이집 교사가 학대 누명을 써 가지고 자살을 한 거에요. 그걸 보면서 ‘나도 언제 이런 일 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해보니까 저희 회사 어린이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에요. 그게 누명인지 아닌지는 밝혀지진 않았지만요. 그때 학대 논란이 터지고 나서 교사가 자살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청 큰일이고 남 일인데도 막 손이 벌벌 떨리는데.. 제가 그 당시에는 회사 안에 있다 보니까 사람이 엄청 경직 되어 있고 그랬어요.

Q. 약간 인간미가 없어지는 거 같으셨던 건가요?

네.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나 봐요.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 정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던 거에요. 그래서 저도 이제 돌아보면 기억도 안 나는 거에요. 해서 친구들한테 물어봤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냐고. 있었데요, 실제로. 해서 제가 어제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내가 그 당시에 정말 내 마음에 얼마나 여유가 없었으면.. 바로 가까이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렇게 주변도 돌아보지 못하고, 뭐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일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잘 그만 뒀다고 생각 들기도 했고.

그래서 어떤 일이 발전이 있는 일일 거 같냐고 물으면 대체 불가능한 일은 사실 많지 않잖아요. 그런 것까진 아니더라도 대체하기 어려운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좀 전문적이고, 사람들이 나를 원하게 할만한 일. 내가 이 조직에서 빠지면 이 조직 망하는 것 까진 아니더라도, 아쉬워하고. 얘같은 애 어떻게 찾아 약간 이러고.

Q. 직장을 그만 두고 제일 먼저 한 일, 혹은 하고 싶었던 일이 궁금해요.

평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못 간 맛집이나 카페 같은데 다녔어요. 저는 그게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런 맛집을 맨날 찾아가도 사람이 너무 많고 웨이팅이 길어서 포기하고 나올 때마다 너무 억울했어요. 회사에 있느라고 이런 곳을 가려면 뭐 연차를 써야 되고 이런 현실이 너무 짜증나고 싫었거든요. 그게 진짜 1년에 몇 번 없는 휴일에만 갈 수 있는 그런 거잖아요. 그게 너무 싫어서 그만 두면은 맛집투어, 카페투어, 이런거 제일 해보고 싶었고요. 아직까지도 자주 하고 있어요. 돈이 많이 없어 가지고 맨날은 못하지만요. 그런거 평일 낮에 가거나 오픈 시간 맞춰서 가면 사람이 없거든요. 저녁이나 주말엔 사람이 많으니까 좋은 곳을 사람 없이 즐기고 싶은데 회사 다닐 땐 그게 잘 안되니까.

그만두면 사실 제일 하고 싶었던 건, 그거에요.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제가 학교랑 회사를 같이 다닐 때는 야간 수업만 들었거든요? 근데 이제 주간 수업도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평일 낮에 캠퍼스를 다니고 싶었던 게, 사람 많은 캠퍼스를 다니고 싶었어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가보지도 못하고 졸업하게 생겼어요. 그게 제일 하고 싶었어요, 사실은. 교양수업 들으러 가서 다른 과 학생들이랑 교류도 하고 이런 거 저런 거도 하고 싶었어요.

Q. 앞으로의 진로 계획을 여쭤봐도 될까요?

잘 모르겠어요. 뭐라도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냥 있어요. 제가 워낙에 돈을 안 벌어온 기간이 잘 없고, 공부를 안 하거나 일을 안 한 시기가 없었어요. 인생을 살면서 지금 처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그만 두면 오히려 불안감에 쫒기면 어떡하지 했는데, 쉬는 게 너무 좋은 거에요. 의외로 그래서 열심히 쉬고 있고, 가끔 불안해하긴 하는데 때가 오면 다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Q. 예솔님에게 청년유니온이란?

제가 여기 미리 적어놓은 건 나에게 청년유니온이란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적었거든요? 저는 청년유니온이 정말 제 인생에서 큰 경험이었던거 같아요. 왜냐하면 워낙에 어렸을 때 경험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 경험 한 게 가치관 형성에 많이 영향을 끼치잖아요. 그래서 청년유니온이 없었으면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들어요. 청년유니온으로부터 시작해서 제가 여러 가지 사회 문제나 인권이나 이런 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고, 그러지 않았으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 수는 있었겠죠. 근데,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알게 된 순간부터 막 분노나 아니면 슬픔이나 이런 것도 많이 겪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해서 완전히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청년유니온이.

Q. 10주년 축하 멘트를 남겨 주신다면?

음.. 일단 10년이라는 세월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같이 버텨내느라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 청년유니온에. 그리고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지나고 제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This Post Has One Comment

  1. 한섬

    이 인터뷰 참 감동이네요. 조합비는 정확히는 청년유니온 초창기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구직자, 실업자는 하루 100원의 의미로 한달 3000원이었고, 이후 대의원대회를 통해 한달 조합비가 당해연도 최저시급으로 결정이 되었고, 그 이후 2014년 2월 청소년유니온이 출범하면서 청소년들의 경제상황을 감안하여 청년유니온 총회에서 청소년(10대)에 한해 조합비를 당해연도 최저시급의 50%로 하는 안을 집행부 안으로 제출하여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예솔 조합원님이 얘기하신 ‘활동회원’ 제도는 청소년유니온 초창기에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제도로, 조합비를 당장 내기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조합비 납부 없이도 활동할 수 있도록 ‘활동회원’을 만들었었고 이후에는 폐지하고 모두 조합원으로 통일시켰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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