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청년유니온 그룹에 올라온 <최저임금 인상 사업단>의 후기를 모은 내용입니다. 



* 범미 조합원 (사업단)




이제 6030원을 받아 들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내년부터 우리 손엔 450원 더 떨어질 겁니다.




우선, 고백하자면, 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걸 안 지도 얼마 안된 무지한 조합원입니다. 실은 지금도 별반 다르진 않습니다. 얼떨결에 최저임금 인상사업단에 들어오게 되어 알게 된 이 과정,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 비정규직 노동자의 2분의 1의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이 과정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 베일에 쌓여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저임금노동자의 삶을 쥐고 흔드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이 위원회의 구성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솟았는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도대체 무어에 근거해서 이들이 우리의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중요 인물이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 회의는 비공개 상태로 이루어진다는 거였습니다.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무리가 어떤 기준에 의해 뽑힌 건지도 모르는데 설상 가상으로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 내용은 그 다음해에서야 공개가 되었다니 혀가 내둘러 질 정도였습니다.




올 해는 노동자위원의 1인으로 김민수 위원장이 들어갔습니다. 마치 청년당사자의 입성으로 인한 것처럼, (물론 제게는 마치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그러하다고 느껴지지만) 소득분배율 지표에 평균임금도 포함시키고, 회의내용도 매 회의 종료 후에 공개하게 되었고, 시급과 함께 월급 환산액도 병기하는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공익위원측의 전술에 내년도 시급은 6030원이 된 것 같습니다. 심의 촉진 구간은 5940원에서 6120원 사이였습니다. 이 부분, 공익위원은 늘 중재적 입장만 취하듯 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것도 임금수준 결정에 앞서 단 한 번의 회의를 남겨두고 특정 숫자를 던져준 것이 제 자신을 의아케 한 지점이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하는 모든 것들은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곳 아니었나요? 그런데 공익위원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심의촉진구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논의도 없이 “통보”를 했습니다. 그 숫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하느님이 귀에 대고 말해준 걸까요? 오구사공 육일이공? 마지막 날에 이르기를 “450원 더 주니 보기에 좋았더라.” 그 수치는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요? 제가 혹시 자다가 놓친 걸까요? 이 공익위원들의 혜안에만 보이는 절대수치인 걸까요? 왜 최저임금 생활자들과는 하등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제시한 이 당치도 않은 심의촉진구간 자체에 대한 논의는 없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심의촉진구간이 발표되었을 시에 전 제 안에서 갈라드리엘의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갈라드리엘은 영화 반지의 제왕 1편 속 요정여왕으로 그녀가 절대반지 앞에서 시험에 처하는 모습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6030원이 던져지자 온갖 곳에서 금액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뉴스와 함께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견해까지도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하이에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이 450원을 더 붙여 던져준 6030원이라는 썩은 고기를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 말입니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숫자가 아닌 던져진 숫자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숫자를 받아 들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중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이 싫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와 그 회의는 실시간으로 공개되어야 합니다. 어느 누가 그 곳에 들어가서 내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지 우린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이전에 예능 프로그램 중에 만원의 행복이란 게 있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이 “6030원의 행복”을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각 공익위원은 각자의 공약을 내거는 겁니다. 삼시세끼가 있는 시급, 결혼이 가능한 시급,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시급 등을 내겁니다. 기자들은 위원장들의 생활을 취재합니다. 어느 위원장이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만 사서 나오는 장면을 잠복 중이던 기자들이 위원장에게 달려가 물어봅니다. “박준성 위원장님, 삼시세끼가 있는 시급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현재 담배만 구입하신 것으로 보이는대요. 저녁은 다른 곳에서 해결하시려는 건가요? 그렇지 않다면 저녁식사는 건너뛰시는 건가요? 삼시세끼를 약속하셨는데 저녁은 건너뛰시는 겁니까? 위원장님! 위원장님! 질문에 답 좀 부탁 드립니다!”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가까운 사생활을 함께 나눠보는 시대인데, 공익을 담당한다 자처하는 분들에게 이 정도 헌신의 기회는 드려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분노를 잠재우고 돌아보면 이 지난한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앞장서 걸어가며 함께한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최저임금위원회에 직접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하여 온갖 고난을 몸소 겪으며 전장과 후방을 연결한 위원장님이 있었습니다. 위원장님과 함께 한 몸인 듯 한 몸 아닌 환상의 콤비를 보여주며 회의의 배석자로서 위원장님에게 총알을 대준 정책국장님도 있었습니다. 위원장님은 정책국장님에게 “사장님일기”의 좋은 소스를 제공하였으며, 정책국장님은 그 소스를 고맙게 받아 최저임금위원회 활동홍보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두 분은 마치 오천크스와도 같은 시너지를 내었습니다.




두 분이 총알이 난무하는 전장의 흙먼지를 마셨다면, 전장 선전과 보급을 담당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변신의 귀재였습니다. 디자인신을 영접하여 밤을 달려 홍보물을 제작하는 가 하면 프로의 뺨을 치는 라디오 디제잉도 하였습니다. 지역으로 달려가 캠페인을 열고 춤도 추었습니다. 이 분들은 매의 눈으로 임하여 전장의 적재적소에 능력에 따라 조합원들을 투입하였습니다. 능력별 포켓몬을 던지는 지우처럼 조합원들을 캠페인몬, 드립몬, 싱어송라이터몬, 댄싱몬, 인터뷰몬, 후기몬, 술몬, 수공업몬, 1인시위몬등으로 분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우리가 있었습니다. 야간알바를 하는 와중에 청유 소식을 통해 최저임금위원회의 근황을 보는 우리가 있었습니다. 업무도중에 페북 탐라를 무한 로딩하는 우리가 있었습니다. 잠을 아끼면서 기사를 작성하고 춤 연습을 하고 노래를 부르던 우리가 있었습니다. 힘내라며 술잔을 기울이는 우리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잘 보냈다며 밤이슬을 함께 맞는 우리가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해줘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여러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느끼는 이 억울함이 단지 마침표가 아님을 압니다. 내일은 좀 더 단단해져 있을 우리는 쉼표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같은 길, 함께 걸어 고맙습니다.




이 글의 비지엠은 산울림의 회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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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원 조합원 (사업단)




“제가 모든 게 처음이나 마찬가지라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최저임금 사업단 첫 모임에서 


운을 띄웠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하늘, 


첫 모임에 늦으면 어쩌나 걸음을 재촉하던 모습,


조금은 낯선 모임에 대한 기대감도 


선명한 기억으로 자리잡혀있다.


이렇게 망설이며 내딛던 첫 걸음은 


마지막으로 저벅저벅 옮겨가고 있다.


나는 최저임금 사업단에 전심으로 ‘동’했다.


온전한 마음을 쏟아내던 


날들이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함께 하던 이들의 웃음이


잊히지 않고 온몸의 감각으로 떠오른다…


웃음의 형태가 어떠하였든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대한


간절한 마음의 형태는 서로 닮아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웃음 속에서 더 이상 씁쓸한 맛이


강요 될 순 없다.


아마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는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성숙으로 이어지는 고통과 아픔을 ‘선택’하고


전심으로 담아내고 있나보다.


때론 보이지 않는 무게에 


압도당한 순간을 마주 할 때에도,


쉼 없는 발걸음 속에서도 


함께 하는 작은 마음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함께 해줘서 고맙고 든든하다”말하며 


웃음 짓던 그들의 표정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른다.


‘단지 몇 개로 조합된 문장인데 


왜이리 기억에 남는 걸까?’


라는 물음표가 있었는데


이건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진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다가왔기 때문 인 것 같다.


‘더’수고함과 ‘덜’수고함을 결정짓는 건


역할의 크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더’ 가치 있는 역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할이 주는 무게감은…


보이지 않는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상근자들을 생각하면 


먹먹해지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마지막이 왔기에 시작과 마주 할 수 있다.


2015년 최저임금 회의장을 통해 


많은 가능성을 이끌어내었고 


함께 함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를 온전히 목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시작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작에


서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무더운 여름날 마음을 함께한 모든 분들의


수고로움과 진정성은 ‘6,030’이라는


숫자에 갇힐 수 없다.


그 동안 함께한 많은 분들


너무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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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조합원 (상근자)




– 청년유니온 상근활동가가 ㅇㅇㅇ조합원님께 –



생각해보면, 제가 처음으로 청년유니온을 만났던 것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집회’ 자리였습니다. 2010년의 비가 오던 어느날.. 당시에도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10원’을 올리겠다고 했고, 이에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위원회(당시 서울) 앞으로 집회를 하러 간다고 해서 나갔었습니다. 그때도 청년유니온은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참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매주 명동에서 캠페인을 했던 것으로 압니다. 당시엔 전 뒤늦게 한번 집회에 참여했을 뿐이었죠) 그로부터 5년 동안 우리는 줄기차게 최저임금위원회에 최저임금 당사자인 청년 노동자가 들어가야한다라고 주장을 했고, 활동 6년차인 올해, 정말로 최저임금위원회에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노동자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뚜둥)



최저임금위원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1박 2일로 청년유니온 집행부 워크숍을 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정준영 정책국장이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진심으로 간절하게 바랬던 적이 있는가?” 매년 ‘최저임금이 올라야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니고, 수많은 캠페인을 하면서도, 어쩌면 그저 매년 정해진 연간 일정처럼 나날들을 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최저임금이 진심으로 많이 올랐으면 좋겠지만, ‘이거 한다고 되겠어?’라는 식의 생각을, 저 또한 하고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30여명의 ‘청년유니온 최저임금 사업단’을 구성하고, 수차례의 회의를 하고, 전국 방방곳곳 캠페인을 다니고, 리플렛을 뿌리고, 서명을 받고,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걷기대회 참가, 등산, 소모임들, 강연, 페스티벌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펼쳐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16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던 그날, 우리는 각자 모니터 앞에서 열심히 F5(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있었습니다. 마침내 ‘6,030’이라는 숫자가 떴고 그 숫자 앞에서 우리는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최저임금사업단’ 단체카톡방에 오르던 많은 분들의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청년유니온 상근자로 일하다 보면 조합원 분들께 항상 “상근자들 너무 고생한다. 나는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미안하다”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게 됩니다. 꼭 최근 가장 열정적으로 나와서 많은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이런 얘기들을 하십니다. 듣는 저희로서는 송구스럽습니다. 직장 생활, 학교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조합원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디 상근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대신에 ‘내가 청년유니온 조합원이다’라는 자부심을 느껴주시면 저희는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 (청유 자랑을 친구에게 늘어놓으며 조합원 가입 독려를.. 응?)



최저임금 결과가 나오고나서, 청소년 조합원 단톡방(제가 청소년사업팀장이라 요 방에 들어가있습니다)에서는 청소년 조합원들의 허망함,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저임금 금액이 너무 적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저는, ‘우리가 이렇게 최저임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서로 많이 이야기나누게 된 것이 성과다, 내년에는 더 많은 이들과 이야기하자’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그 어느 해 보다도 ‘최저임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최저임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았던 것 같습니다.



‘멀리 내다본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싸우는 것 보다도, ‘내 안의 무기력’과 싸우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곁’을 보며 힘을 냅니다. 최근 최저임금 페스티발 뒷풀이 자리에서 한 조합원 분이 제게 “항상 활기가 넘쳐서 최근 활동을 시작하신 건 줄 알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자리에서 조합원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쓰다보니 오그라드는 표현을 잔뜩 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하하하하). 수많은 조합원 분들이 해주신 말씀을 저도 다시한번 하며 글을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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